진주소방서 평거119안전센터 소방장 표병희
최근 뉴스를 보면 “갑자기 땅이 꺼졌다”는 보도가 자주 등장한다. 이른바 ‘씽크홀’ 현상이다. 화면 속 거대한 함몰 지반을 볼 때마다 ‘지나가다 나도 빠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드는 분들도 적지 않을 거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런 씽크홀이 대부분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위적인 원인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씽크홀 발생의 가장 큰 원인은 평소에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지하에 매설된 노후 상·하수도관이다. 특히 하수관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수관에 균열이 생기거나 파손되면 틈으로 물이 틈으로 새어 나가고, 그 물이 주변의 흙을 쓸어내면서 지반 아래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된다. 이 공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반을 지탱하지 못하고 결국 함몰되면서 씽크홀이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전체 씽크홀 사고의 60% 이상이 상·하수도 문제로 발생하며, 이 중 80%가 하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통계도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지하수의 과도한 사용이다. 지하수를 대량으로 퍼올리면 지하수위가 낮아지면서, 원래 물이 채우고 있던 지하 공간이 비게 된다. 이로 인해 위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한 지반이 무너질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지하수 사용이 많은 도시에서는 이로 인한 대형 씽크홀 사고가 더 자주 발생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씽크홀은 총 2,085건이다.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어딘가에서 지반 침하가 발생한 셈이다. 최근 발생한 사례 중 가장 충격적인 사고는 서울시 강동구 대명초사거리에서 발생한 대형 씽크홀이다. 폭 20~25m, 깊이 15m에 달하는 규모로 약 2,000톤의 물이 유출되었고, 지하철 9호선 4단계 공사 중 터널 천장이 붕괴되어 약 6,500톤의 토사가 유입됐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이외에도 경기 광명시, 서울 여의도, 인천 부평 등지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가 씽크홀에 빠져 사망하거나 다친 사례 등 유사한 사고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단순한 통행 불편을 넘어서,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안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하는 땅꺼짐은 교통 정체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인근 도로와 상하수도망, 물류 시스템까지 마비시켜 도시 기능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다.
지역별 발생 현황을 보면, 경기도가 429건으로 가장 많고, 강원도 270건, 서울 216건으로 뒤를 잇는다. 특정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지하시설이 노후화되었거나 개발이 집중된 도시 지역에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국내 인구의 91.2%가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교통 정체 해소를 위한 지하도로, 지하철 등 지하 공간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그만큼 사고의 가능성도 함께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관련 제도의 시행 시기다. 우리나라에서 지하시설물 공사 시 ‘지하안전성 평가’를 법제화한 것이 불과 2년 전이라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법이 과거에 착공된 공사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20년에 시작한 공사는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법이 마련되었음에도 여전히 규제의 사각지대가 존재해 사고 예방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땅꺼짐 사고를 마냥 불안해하며 살아야 할까? 해결책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선, 노후된 상·하수도관을 철저히 점검하고 신속히 보수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2015년부터 추진된 ‘지하공간 통합 지도’ 구축 사업이 현재 전국 시 단위까지 대부분 완료된 만큼, 이 데이터를 고도화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위험 지역을 사전에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지하 굴착 공사 시에는 철저한 안전성 평가와 실시간 감시 체계를 마련해, 또 다른 사고를 사전에 막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
씽크홀은 작게는 도로 일부 침하로 끝날 수 있지만, 크게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매번 사고가 발생한 후 뒷수습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단기적 조치를 넘어서는 100년 단위의 중장기 전략과 체계적인 지하공간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딛고 선 땅 아래 어딘가가 조용히 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의 안전을 위해 지금이라도 면밀히 들여다보고 적극적인 대비에 나서야 할 때다.
기사최종편집일: 2025-06-20 0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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